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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동헌 풍낙헌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1-09-04 (일) 10:02 조회 : 1539




조선시대 지방행정조직은 전국을 8도로 나누고 그 아래 부, 목, 군, 현을 두었다.
전주는 전주부에 해당되며 전주부윤이 임명되어 다스렸지만, 전라감사(관찰사, 오늘날 도지사)가 전주부윤을 겸하고 있었다.
실제 전주부의 통치업무는 중앙에서 파견된 판관(判官)이 담당하였다.
관찰사가 전라도 전체를 돌아다니면서 전라도 행정을 맡아보아야 했기 때문에 판관은 감영에서 관찰사의 공백을 메우면서 업무를 수행하였다. ‘
전주부’라고 하면, 지금의 전주시청을 말하는 것이고, 동헌은 고을의 수령이 집무를 보는 곳이다.
동헌인 풍락헌은 현재 전주시장의 집무실에해당 된다.
전주 판관이 근무하던 공간은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이 있는 구역과 구 전북은행 본점이 있는 구역을 포함한 약 7천여 평이었다

전주판관이 근무하던 건물은 풍락헌(豊樂軒)이라 하였으며 현 중소기업은행 자리에 위치하였다. 음순당(飮醇堂)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던 풍락헌은 전면 7칸의 팔작지붕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고, 또한 좌우 1칸의 크기는 중앙 5칸에 비해 기둥 사이가 약간 좁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음순당이란 편액은 1901년 당시 전주군수였던 취송(醉松) 이삼응(李參應)이 제작한 것으로 조주승이 썼다. 전주판관의 설치 때부터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풍락헌은 1758년 판관 서노수가 개건하였고, 1890년 화재로 소실된 뒤 1891년 판관 민치준이 중창하였다고 한다. 이 풍낙헌은 1895년 행정구역개편으로 전주부가 폐지되고 전주군이 설치되면서, 1935년 전주군 전주읍이 전주부로 승격할 때까지 전주구청으로 사용되었다.

전주부사에 의하면 1934년 봄 이 풍락헌은 매각되어 구이면 덕천리(옛 태실리) 전주류씨 제각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옮겨질 당시 음순당 현판은 떼어 내어 옛 객사 내에 두었다고 하나 현존 유무를 할 수는 없다. 전주류씨 제각으로 사용된 풍락헌은 전면이 7칸이 6칸으로 줄어들고, 내부 역시 제실에 맞도록 많은 변형이 이루어졌다. 풍락헌은 전주류씨의 기증으로 2011년 전주향교 옆에 이전 복원되어 전통문화연수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복원된 풍락헌의 모습



2005년 4월 3일 촬영, 기업은행자리가 풍락헌이 있던 자리
조선 몰락 후 풍락헌이 전주군청으로 쓰였으며, 1935년 전주읍에서 전주부로 승격하면서 그 자리에 전주부청사를 새로 건립하였다. 시의 확장과 함께 1963년 전주시청사를 3층으로 다시 건립하였으며, 1983년 노송동 구전주역자리로 옯겨 지상 8층, 지하 1층의 전주시청사를 신축하였다.
60,70년대 랜드마크 역할을 했던 미원탑(1967년 건립,1979년 철거)이 있던 사거리,
2001년에 도로 원표가 사거리 바닥에 설치되었다. 기존의 도로 원표는 기업은행 건물 모퉁이에 기둥모양으로 남아있다.

현재 전주시청, 풍남문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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