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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막부 시대 슈인조?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11-11-29 (화) 06:31 조회 : 876
에도 막부는 중국과 조선을 제외한 다른 나라와는 외교 관계를 끊고 무역을 제한하는 등 엄격한 쇄국 정책을 실시하였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첫째는 다이묘나 상인들이 독자적으로 외국 무역을 통해 경제력을 축적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중국이나 조선과는 물론 국교가 없어도 동남아 국가들과 무역은 지속하였다. 그러나 무역은 막부(바쿠후)의 무역 허가증인 슈인조(朱印狀)를 받은 자만이 할 수 있었다. 이 무역선을 슈인센(朱印船)이라고 하였다.
에도 막부가 쇄국 정책을 편 두 번째 이유는 크리스트교의 확산 때문이었다. 일본의 크리스트교는 1549년 에스파니아의 선교사 프란시스코 사비에르가 사쓰마에 도착하면서 처음 전파되었는데, 16세기 후반에는 이미 신도 수가 20만 명을 넘었다. 막부는 처음에는 크리스트교에 대하여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러다 외래 종교의 유입에 대한 불교나 신토 등 기존 종교의 반발이 강해 막부는 1612년 크리스트교 금지령을 내렸지만 아직 본격적인 탄압은 행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1637년 오늘날의 나가사키 현에 위치한 시마바라(島原)에서 크리스트교도가 중심이 된 반란이 일어나자 막부는 크리스트교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는 한편 더욱 엄격한 쇄국 정책을 실시하게 되었다. 이때 크리스트교도를 색출하기 위해 실시된 것이 후미에(踏繪)로서 예수의 그림을 땅에 놓고 그것을 밟고 가게 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쇄국 정책 가운데서도 네덜란드에 대해서만은 교역을 허용했는데, 그것은 네덜란드가 신교 국가이자 신흥 상공업자들 즉 부르조아지들이 중심이 된 신생 독립국으로서 포교보다는 오직 상업적 이익에만 관심을 두었기 때문이었다. 네덜란드와의 교역에 중심이 된 곳은 바로 나가사키로 지금은 매립으로 육지의 일부가 되어 있는 데지마(出島)는 그 당시 네덜란드 상인들의 제한된 집단 거주 지역이었다.
네덜란드는 교역뿐만 아니라 서양의 학문과 지식을 일본에 전달하는 유일한 통로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일본인들은 서양인을 모두 화란인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네덜란드를 통해 들어온 서양의 학문을 모두 난학(랑가쿠,蘭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난학의 발전은 일본 근대화의 중요한 근원 가운데 하나가 된다.

☞특수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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